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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17년, 탄성력을 키우자

관련국가 뉴질랜드, 미국, 베트남, 싱가포르, 중국, 칠레, 캐나다, 호주, EU 분야 산업·통상
발간기관 KOTRA 발간일 2020-12-21


FTA 17년, 탄성력을 키우자

-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


FTA 강국


대한민국은 글로벌 통상강국인가?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2위인데 무역규모는 세계 6위이다. 경제 규모와 무역 규모가 큰 20대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2019년 83%)는 네덜란드와 독일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현재 56개 국가와 16건의 FTA를 발효한 상태인데, 서명 또는 타결한 건수 4건 외에도 협상 중인 7건을 포괄하면 FTA 대상 국가는 70여개에 이른다. 거대 경제권인 미국, 중국, EU, ASEAN과 모두 양자협정으로 FTA를 발효하고 있는 국가로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2020년 상반기 우리나라의 FTA 대상 국가들과의 교역 총액은 전체 무역 규모의 71.4%를 차지할 정도이니 가히 FTA 강국이랄 수 있다. 협정 발효일 기준으로 한-칠레 FTA(2004년)에서 출발하여 5건의 협정은 2010년까지 발효되었지만 나머지 11건의 협정은 2011~2020년에 발효되었다. 즉 우리나라는 2011년 EU, 2012년 미국, 2015년 중국과의 FTA를 포함하여 10년간 FTA를 지렛대로 하여 글로벌 통상강국으로 발전해 왔다.


미국발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적 보호무역주의는 양자적 통상마찰뿐만 아니라 다자주의적 글로벌 통상체제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집권 초기 NAFTA 탈퇴 위협 후 USMCA로 재협상,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탈퇴, 한-미 FTA 재협상, 세계무역기구(WTO) 탈퇴 위협과 상소기구 운영 마비 등 파격적인 전략적 선택은 단지 일회적인 충격요법으로만 일축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흐름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공화당의 전통적인 가치와 배치됨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이행된 것은 미국 국내 경제 상황, 특히 일자리 창출의 절실한 필요성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경제적 기술적 추격이 관리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위기감의 확산이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된다. 즉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추진 방식은 수정할지라도 미국의 국내외 사회경제적 여건은 글로벌 통상환경을 또 다른 양상으로 긴장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America First”는 바이든 행정부의 “Buy American”으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무대의 중심에 설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과 패권전쟁은 물러설 수 없는 치킨게임이 될 것이다.


FTA 허브의 고도화


FTA 허브(hub)를 지향하는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방향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미-중 무역분쟁의 구조적 흐름을 돌파할 수 있을까? USMCA와 한-미(KORUS) FTA 재협상의 경우를 보면 FTA 자체가 무역 활성화의 안전장치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FTA가 당사국끼리 무역과 투자 장벽을 철폐 또는 완화시키는 촉발제가 되지만 이후 효과적인 이행관리 여부에 따라 무역이익(gains from trade) 창출의 지속적인 확대 정도가 달라진다. 미국은 USMCA를 통해 인접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서도 노동과 환경 보호 기준을 강화했다. 특히 자동차 부품의 40-45%는 시급 16달러 이상의 근로자가 생산하도록 함으로써 인건비가 비싼 미국 내 생산을 간접적으로 유도했다. 이와 동시에 자동차와 관련 부품의 무관세 수입 물량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FTA 정책은 한층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이를테면 지난 11월 15일 최종 타결 및 서명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주축이 된 ASEAN과의 관계를 고려해 보자. 우리나라는 2007년 한-ASEAN FTA를 발효하였고 2006년과 2015년에는 회원국인 싱가포르와 베트남과 각각 양자간 개별 FTA를 발효하였다. 인도네시아와도 2009년 CEPA를 타결하였고 필리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와는 개별 FTA를 협상 중이다. 10개 회원국들 가운데 주요 6개 국가들과는 3개의 FTA가 중첩된다. 글로벌 공급망(GVC)의 재편 과정에서 ASEAN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한-ASEAN FTA와 RCEP을 보완하기 위해 ASEAN 회원국들과의 양자간 개별 FTA를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FTA 체계를 심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신남방정책의 실효성을 심화하고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FTA의 효과적 활용


FTA를 어떻게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FTA 체계는 교역국 간 배타적인 무역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FTA가 관세 인하와 철폐, 비관세 장벽의 완화와 철폐, 적극적인 무역원활화 조치 등을 명시하고 있다 하더라도 관건은 기업이 실질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우리 기업의 FTA 15개 협정에 대한 수출 활용률은 2016년 63.8%에서 2019년 74.9%로 상승하였다. FTA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수출 상품의 약 25%는 직접효과를 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활용률을 부문별로 보면 기계류는 85.1%, 광산물은 77.8%, 전자전기제품은 68.9%로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에 섬유류와 생활용품은 각각 51.1%와 55.5%로 비교적 미진한 수준이다. 협정별로는 캐나다(95.2%), EU(86.9%), 미국(85.2%), EFTA(83.2%), 호주(82.8%)에 대한 활용률이 높은 반면에 중국과 뉴질랜드의 경우는 각각 57.2%와 41.2%로 상당히 저조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중 FTA에서 관세 철폐 일정이 즉시 철폐는 44.0%이고 5년 후(3.5%), 10년 후(18.7%), 15년 후(13.1%), 20년 후(5.6%)의 장기 비중이 높고, 대(對)중국 수출이 가공무역 중심인 영향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對)중국 수출에서는 FTA 활용률을 높일 여지가 커 보인다. 뉴질랜드는 생산설비와 가공 원재료, 소비재의 상당 부분은 자국 내에서 생산이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FTA와 별도로 자율적으로 관세율을 인하한 결과로 파악된다.


FTA 수출 활용률이 매년 전반적인 상승세를 나타내지만 복잡한 원산지 기준과 교역국의 불확실한 통관 절차와 행정은 구조적인 제약 요인이다. 특히 전담 전문 인력과 경험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신시장 진출 기업의 경우에는 활용 행정 비용이 혜택을 초과할 수 있으므로 시도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 관세청에서 수출 기업에 대해 FTA 활용 컨설팅을 지원하고 KOTRA에서 교역국의 통관 기준과 절차에 대한 실질적인 애로사항을 조사하여 지원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시장 개척 기업으로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원 신청 절차를 단순화하고 일회적이 아닌 주기적 맞춤 컨설팅의 질적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KOTRA에서 조사한 교역국 현지의 실무적 애로사항을 정부가 협정국별 FTA 이행 점검 위원회 또는 민관합동 점검 TF를 통해 실질적인 개선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통상정책의 전략적 선택

FTA 수출 활용률 = ( FTA 원산지 증명서 발급 실적 ÷ FTA 특혜 대상 품목 수출 실적 ) × 100


국제정치와 기술혁신 패러다임의 변화로 인해 더욱 복합적인 글로벌 통상환경에 직면한 우리나라의 통상정책은 어떤 전략적 선택을 추구해야 하는가? 통상환경 변화의 방향과 속도와 초점에 대한 통찰력을 높여야 한다. 먼저, 국제통상의 디지털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대응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데이터와 초연결성(hyper-networking)이다. 국제무역에서도 상품과 서비스가 공급되기 전에 먼저 데이터가 글로벌 초연결망을 통해 공급된다. 국내외 소비자가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기 전에 먼저 초연결망을 통해 데이터를 탐색하고 선택한다. 2019년 5월 WTO는 83개 회원국이 참여한 전자상거래 협상을 개시했다. 국제적 디지털 규범을 제정하여 국경 간 데이터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지적재산권(IP) 보호가 강화되고 망 중립성 원칙이 정립된다면 디지털 통상의 흐름은 가속화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3주년 기념 특별연설에서 디지털 인프라의 확충을 약속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디지털 통상 아카데미의 시범 운영과 전문 인력 양성을 추진해 왔다. 주요 경제권과의 통상 패러다임의 전환 방향에 선도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가 ICT 강국이라지만 디지털 통상 부문의 규범 의제와 활용면에서는 주도권을 강화해야 한다. 


통상환경 변화의 특성과 속도는 그저 빠르다는 측면만이 아니라 가변성과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는 측면으로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트럼프 행정부 4년 동안 글로벌 통상 여건과 구도가 급격하게 변화한 것과는 다른 측면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환경과 노동 기준 중심의 통상 전략이 또 다른 불확실성을 확산시킬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국과의 연합을 강조하지만 한-미 FTA 제20.3조 환경법의 적용 및 집행 2항에 근거하여 환경 보호를 약화시키는 무역이나 투자 장려를 제재하려 한다면 파급영향은 커질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불확실한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완충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FTA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글로벌 통상환경의 단기적 변화는 공급망(GVC)의 재편에 초점이 주어질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과 패권전쟁이 방식만 달라질 뿐 장기화된다면 글로벌 공급망의 단기적 재편은 구조적 재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 내 공급망(RVC) 또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으로 중국 중심 GVC의 리스크를 분산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제2의 중국으로써 베트남이나 ASEAN만이 아니라 제3, 제4의 통상 중심축을 형성하여 다변화해야 한다. 인도를 신남방정책의 주요 협력국으로 구성하고 신북방정책이 중앙아시아를 포괄하는 전략적 선택은 다변화의 초점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FTA 허브(hub)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로서는 FTA의 연결살(spokes)을 확장하여 시장을 다변화하고 협정국들 간 경쟁을 유도하면서 통상대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FTA 체력 보강


무역 자유주의와 보호주의의 이익과 손실은 환경 변화와 활용 방식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FTA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2004년 4월 한-칠레 FTA 발효 시점부터 약 17년간 우리나라의 FTA 정책은 보약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우리가 노심초사하면서도 과감하게 통상의 활로를 개척해 왔다. 이제 FTA의 가지들이 비바람에도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튼튼한 밑동을 지속적으로 배양해야 한다. 우리 국민 개인과 기업과 국가 전체의 핵심적인 이익을 추구해 나아가는 통상의 종합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 매년 대통령에게 통상 전략 보고서가 제출되어야 한다. 통상강국이라지만 정부와 기업의 통상 조직과 전문인력과 인프라는 강국 수준이 아니다. 애국심과 애사심으로 통상환경의 돌풍을 돌파하기에는 체력이 부족하다. 강건한 FTA 동맥으로 열일곱 살 청년의 체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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